옛날 시골집 앞마당에는 으레 ‘작두 펌프’가 있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힘껏 펌프질하면 주둥이로 맑은 물이 콸콸 쏟아 졌죠. 그 물로 어머니들은 쌀을 씻고 갓 따온 수박과 참외를 담가 두어 여름 더위를 식혔습니다. 낮에는 아이들의 물장난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 한켠이 포근해지는 정겨운 풍경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이런 펌프가 있습니다. 바로 ‘감정 펌프’입니다. 쉼 없이 감정을 만들어내는 내면의 장치죠. 오감을 통해 자극이 인식되는 순간, 좋고 싫음의 감정이 자동으로 일어나고 뇌에서는 그에 맞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스스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감정이 올라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 체계 안에 그 반응 회로가 이미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어난 감정은 연쇄 반응으로 이어져 더 강한 감정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분노, 슬픔, 두려움, 수치심,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의 빈도와 강도가 긍정적 감정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점입니다.
부정적 감정이 펌프질하는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샤워하게 됩니다. 금세 몸은 지치고 마음은 메말라 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작용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벗어 나는 유일한 길은 ‘긍정 펌프’를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이 펌프질에 서툽니다. 잘 쓰지 않던 펌프를 다시 사용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참을 펌프질해야 깊숙한 곳의 물길이 압력에 의해 서서히 올라옵니다. 긍정 펌프에서 넘쳐흐르는 맑은 물을 얻기 위해선 명확한 선택 의도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두 개의 펌프질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 감정의 펌프질을 해댈 것인지, 긍정 감정의 펌프질을 해댈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입니다. 사랑, 자비, 감사, 기쁨, 평온 같은 긍정적 정서들은 이미 우리의 마음 저수지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자주 사용하지 않아 겉으로는 메말라 보일 뿐입니다. 긍정 펌프를 작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마중물은 ‘연민’입니다. 특히 자기연민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콤플렉스와 화해하고 더 유연하고 성숙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태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며, 수용성과 공감력을 키워줍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고통을 바라보고 그 고통을 연민으로 안아주는 일은 가장 고귀한 행위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무의식의 어둠이 벗겨지고 우리는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거울이 햇살을 반사하듯 타인의 고통 또한 내 마음 안에서 공명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자비, 감사와 기쁨이 자연스레 흘러넘칠 것입니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