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홀로 만개한 어느 벚꽃 나무를 마주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여전히 검고 메마른 겨울의 몸통을 지키고 있을 때, 그 나무는 홀로 화사한 꽃을 피워냈더군요. 지나가는 이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나무 아래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봄 햇살을 만끽합니다. 유난히 시렸던 지난 겨울이 우리 마음을 서둘러 봄으로 이끄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렇듯 따스한 봄빛이 들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하는 자신의 ‘말’을 유심히 살펴보기를 권해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때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내뱉기도 하죠. 사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언어습관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근본 메커니즘이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Karma) 중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구업(口業)’입니다. 특히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이간질하거나, 혹은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가만히 관찰해보세요. 조금만 연습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집니다. 내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알아차림’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훨씬 고요하고 충만해질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구조화하고 인식하는 틀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언어의 사용에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역설적이게 의식 세계를 넓혀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입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이며 성숙의 고삐를 쥐는 것과 같습니다.
고대로부터 다양한 영성 전통에서 ‘고귀한 침묵(Noble Silence)’이 핵심적인 수행 도구였음은 자명합니다. 침묵은 단지 입을 닫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침묵은 생각마저도 고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내면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를 ‘나 자신과 하는 깊은 대화’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과 친숙해지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열린 마음은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되고 하나가 됩니다. 지극한 행복과 신성(Divinity)은 바로 그 지점에 머뭅니다. 이러한 침묵은 그 자체로 깊은 명상입니다.
지혜는 결코 외부에서 빌려올 수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한 존재의 변화와 성숙은, 침묵이 온몸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따스한 봄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내면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이 열릴 때, 우리는 세상의 온갖 것들과 다정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