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원 vs 영향력의 원 : ‘行’

By CARROT 4 min read
관심의 원 vs 영향력의 원 : ‘行’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쏟고, 또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무한 스크롤 SNS 덕분이고, AI 덕분입니다. 그런 데 우리의 일상은 과연 더 성숙하고 행복해졌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탐욕은 커지고, 질투심은 불타오르며, 불안과 우울, 공황장애, 성인 ADHD와 같은 마음의 문제들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 어그로성 콘텐츠들이 하루 종일 우리의 주의를 훔쳐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흩어진 마음일 뿐, 결코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이것을 ‘관심의 원(circle of concern)’과 ‘영향력의 원(circle of influence)’으로 설명했습니다. 관심의 원만 커지면 삶의 초점은 흐려지고, 정체성은 모호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쉽게 휘둘리며, 의존적이고 불만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열정이 한여름 태양만큼 뜨거워도, 초점이 없다면 종이 한쪽도 태울 수 없습니다. 그런 삶에 깊이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반대로 영향력의 원이 큰 사람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들 은 실행을 통해 환경을 극복하고 삶을 축적합니다.

문제는 SNS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심의 원’을 끝없이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뇌과학적으로 보면 환경이 나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탐닉하고 쫓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내 감각이 이미 그런 자극에 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은 잠시도 공허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배회합니다. 중요한 건 이 배회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行’을 통해 다시 초점을 날카롭게 세울 수 있습니다. 잠시도 공허함에 심왕(心王)의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일상에서 잠시라도 고요에 머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알아차림은 고요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요에 머무는 행위’야말로 말 많은 SNS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유지할 힘, 이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망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성찰하며 성장합니다. 뛰기 전에 멈추는 개구리처럼, 쏘기 전에 뒤로 당 겨지는 화살처럼, 숙고와 성찰은 성숙으로 나아가는 삶의 전제입니다.

이제 아는 척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일상에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성장하고, 의식을 확장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의 눈에 새로운 시대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릴 것입니다. 삶의 신비는 주변의 수많은 관심거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알아차림’과 행(行)에 있습니다. 선에서는 이것을 ‘당하착시(當下着 時), 즉 지금 바로 여기서 당장!’이라고 합니다.


C.E.O James Roh (노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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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독약은 안타까울 만큼 매혹적으로 보인다. _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