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날로그

기계와 비교하지 않고 경쟁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아날로그적 가치를 명확히 할 때, 우리는 그 어느 시기의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By CARROT 4 min read
마음: 아날로그

벌써 1년 6개월 전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할 때 오래된 산골마을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어린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뛰어놀거나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하늘처럼 맑았다. 툇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저녁을 준비하는 아낙네의 바쁜 움직임, 그리고 마당을 돌아 다니는 강아지의 풍경은 옛 우리 시골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동네 곳곳을 기웃거리다 특이한 것을 발견했는데, 집 입구마다 나무막대 몇 개를 가로로 걸쳐놓은 것이었다.

최근 나는 제주도의 전통 대문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바로 정주석과 정낭이다. 막대기 세 개가 모두 내려져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으니 들어오라는 신호이고, 하나가 걸쳐져 있으면 금방 돌아온다는 신호, 두 개가 올려져 있으면 오늘 중으로 들어온다는 신호, 세 개가 모두 올려져 있으면 출타하여 당분간 집에 없다는 신호이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이 어떻게 하늘 아래 히말라야 중턱 마을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을까?

디지털 혁신(digital transformation)이 세상 흐름의 중심에 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하급수 기술들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의 ‘오감’이라는 아날로그 능력은 현란한 디지털을 쫓다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나’를 느껴볼 여유를 잃어버렸다. 용기 내어 ‘디지털 단식’을 시도해 보지만 채 하루를 견뎌 내지 못하고 굴복하고 만다. 이것도 부족해서 인공지능(AI) 시대의 생존력이라며 우리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일찍 코딩능력을 확보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현재 실시간 영상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을 운영하고 있다. 톈왕은 중국 전체 인구를 1초 만에 조사할 수 있고, AI 안면인식 시스템은 움직이는 사람도 거뜬히 식별하며, 정확도는 99.8%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모든 개인에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회신용점수제를 도입하여, 만약 점수가 낮으면 인터넷 사용이 불가하거나 금융이 제한되며, 기차표나 비행기표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된다. 인간과 기술, 대상과 종속의 문제는 더 이상 지체없이 심도있게 다뤄져야 할 주제가 되었다.

프랑스 시인 퐁주는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종속되지 않는 온전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인간은 다시 우리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할 때이다. 기계와 비교하지 않고 경쟁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아날로그적 가치를 명확히 할 때, 우리는 그 어느 시기의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히말라야와 제주도를 이어주는 ‘정주석과 정낭’은 상호신뢰, 배려, 공동체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마음’, 아날로그의 표상이 아닐까 싶다.

                                                     C.E.O James Roh (노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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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존재가 인간이기 떄문에 우리는 인간성에 대해 절망할 수 는 없다.『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