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 Vs. 미래

이제는 러다이트 운동가처럼 망치를 들고 밀려오는 시대적 변화를 막아설 수 없다. 그렇다고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저앉아 막연한 미래를 동경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의 지향점이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증진에 있음이 확고하다면, 그 미래는 우리에게 개척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자.

By CARROT 3 min read
러다이트 운동 Vs. 미래

산업혁명의 심장이었던 영국 런던에서 일찍이 한 노동자의 외침이 울렸다. “기계들이 우리 노동자들의 일을 대신해 버린다. 기계가 많아질수록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생존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니 저 기계들을 부숴버리자!” 노동자들은 몰려다니며 공장을 습격하고 방적기를 망치로 때려 부쉈다. 일명 “기계파괴운동”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1년 이상 영국 전역에서 나타났으며,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러다이트 운동”이라 불렸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오늘,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 선 우리는 다시 한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사실 그 변화의 규모와 속도만으로도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 있으며, 미래에 대한 회의적 관점을 주시하기에 충분하다. AI로 수렴되는 미래사회에서 기술은 인류에게 새로운 진화의 도화선이 될지 아니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의 존재를 위협하게 될지 아직 모를 일이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일까? 최근 영국에서는 “Humans(휴먼스)”라는 8부작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인간과 거의 흡사한 AI로봇이 가정의 필수 아이템이 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SF드라마이다. 엄마, 아내보다 더 다정하게 집안일을 돌봐주는 AI로봇과, 남편보다 훨씬 자상하게 아내를 돌봐주는 AI로봇이 등장하면서 가족 내 관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이런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도덕성을 겸비한 완벽한 AI의 출현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는 없다.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답을 찾기보다 개념을 정의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한 성격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서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는 힘이다.

이제는 러다이트 운동가처럼 망치를 들고 밀려오는 시대적 변화를 막아설 수 없다. 그렇다고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저앉아 막연한 미래를 동경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의 지향점이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증진에 있음이 확고하다면, 그 미래는 우리에게 개척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자.

그 순간 더 이상 두려움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C.E.O James Roh (노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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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장 보드리야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