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층적이며 다양한 양태로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시간을 축으로 점철되어지며 우리의 일상과 삶을 형성한다. 누구를 만나는 것, 즐거운 일을 하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나이들어 가는 것. 하지만 시간은 선택에 의한 기회비용을 갖는 특성이 있다. 이것을 함으로써 저것을 하지 못하는 상대적 비용이 그것이다. 따라서 시간은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도 아니며, 흐르는 물처럼 그 자리에 늘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철저히 선택한 주체에 의해서 결정되어지고 채워지며 해석되어지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시간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불렀다. 하나는 우리의 경험체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시간이며, 크로노스 chronos라 불렀다. 이런 시간은 선형적이며, 양으로 표현하기 쉽고,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간 time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경험체계에서해석되어지는 주관적 시간이며, 카이로스 kairos라 불렀다. 이 시간은 비선형적이며, 양으로 잴 수 없고, 삶에 오랫동안 잔존하며 우리를 형성(becoming)시킨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시간의 개념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낯선 유산과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나’는 곧 ‘나의 삶’을 의미한다. 자기의 삶을 평가할 때 크로노스 관점에서 시간의 양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좋은 삶,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 할 때 이것은다분히 질적이며, 카이로스적 관점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카이로스적 관점을 인지하고, 유지하는 한쪽 눈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세계의 현상 중 하나는 속도다. 우리의 삶이 여기에 매몰되어 있고, 승패가 여기서 갈린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승자가 있을 수 없는 제로섬게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크로노스의 속성이다. 이러한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을 개인의 경험체계 안에서 해석해 내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질적개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0년, 우리는 어떠한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살 것인가? 지난 10년 보다 더 의미 있고, 값진 새로운 10년의 단초를 만들어 내는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주어지는 시간 속에 종속된 크로노스적 삶을 거부하고, 온전한 주체로서시간을 창조해 나가며, 능동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여행자가 낯선 길에 들어설 때 느끼는 그런 긴장과 흥분으로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