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며: ‘고통’에 대하여

행복을 노래하는 시인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새를 묘사하며,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한 소년이 진정한 자기의 삶을 찾아 떠난 여정을 통해 헤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By CARROT 4 min read
겨울을 나며: ‘고통’에 대하여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래도 봄이 기다려 지는 것을 보니 겨울은 틀림없던 모양이다. 아직은 세상의 땅들이 얼어있고 생명의 씨앗들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받들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먼저 간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고통이 충만해지는 그 시점에서 생명력은 꿈틀거리고 대지는 나팔을 불기 시작할 것이다.

고통은 성찰의 집으로 향하는 침묵의 안내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겨울의 나목처럼, 완전히 발가벗겨진 자기 self와 마주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기쁨과 슬픔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무이자 대지이고 겨울이자 봄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내 안의 나'와 '나' 그리고 '나를 응시하고있는 나'는 이렇게 하나가되고 성숙해간다.

행복을 노래하는 시인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새를 묘사하며,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한 소년이 진정한 자기의 삶을 찾아 떠난 여정을 통해 헤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세계를 구축하고 동시에 그 세계를 깨고 나와야하는 우리의 숙명과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같은 것이며 그것이 온전히 자신안에 수렴할 때 우리는 내 안의 신 아프락사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하지만 그 축복이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수많은 사슬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이 없이는 안된다. 여기서 대오각성은 사슬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몸부림은 시작된다. 사슬 마디마디에 붙어있는 자아를 하나씩 발라내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다이몬 daimon을 찾을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다.

하루가 영원같고, 그런 영원은 하루와 같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 이럴때일수록 가짜가 설친다.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득실댄다. 이스라엘의 한 신비주의자 랍비는 코로나를 예정된 종말의 신호라고 이야기하며 대서특필한다. 고대철학자들은 이런 광적인 외적현상을 ‘판타지아 phantasia’라고 불렀다. 두고 볼 일이다. 얼마가지 않아 자명해질 것이다. 스피노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명료함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은 삶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뚫어낸 자들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C.E.O James Roh (노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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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란 그대의 깨달음을 가두고 있는 껍질이 깨어지는 것 『칼릴 지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