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하고 싶다면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지금 내가 무엇에 결핍되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보편적인 결핍은 식욕과 같은 1차원적인 생.물리적 결핍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원초적 고통을 알 수 없다. 사흘을 굶주린 어른이나, 젖 때가 지나 엄마를 찾아 우는 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결핍은 충족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좀 더 높은 수준의 결핍이 드러난다. 바로 안전 욕구나 어떤 집단에 소속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그러하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면 비로소 자기고양 욕구도 일어난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세우고 사회인으로서 자기 효능감을 지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욕구들은 위계적으로 작동하며 일정도의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그다음 단계의 욕구가 자동적으로 발현되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A.매슬로우는 욕구 위계설을 토대로 결핍 수준에 따른 인간의 보편적 행동 지향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결핍된 욕구는 충족되어질 때 까지 지속되며, 하위 욕구일수록 그 결핍의 강도는 크게 작용한다. 이것이 우리를, 사회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동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들은 내가 환경과 상황에 의해 우리의 몸이, 마음이 지배되고 끌려다니는 피동적 욕구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물질이 충족되었음에도 이런 1차원 적인 결핍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피동적 결핍에 중독된 행태로서, 물질만능의 욕구에 스스로를 포로로 가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리 삶이 결핍의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결핍에 종속된 노예와 다를 바 없다.
동시에 매슬로우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임하고, 삶을 창조하고자 하는 보편적 욕구가 있다는 것을 성찰해냈으며 이를 자기실현의 욕구라고 정의하였다. 자기실현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환경에서 주어지는 피동적 결핍이 아닌, 스스로 창출하고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 결핍인 것이다. 자기실현 욕구는 일단 발동이 걸리면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이유도 없다. 결핍이 보편적이듯,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고양된 의식 또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고양된 의식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빅 퀘스천을 던지고 탐색의 여정에 한걸음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초적 힘이 주어진 결핍에서 나온다면,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힘은 자신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매슬로우는 이를 “메타 동기”라고 했으며, 삶을 통해 자기실현을 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정의했다.
결핍은 인간이 세상을 들어 올리는 힘이다.
하지만, 주어진 결핍에 중독된 채 소진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향한 결핍을 스스로 창조해 내며 삶의 위대한 여정에서 자기를 실현할 것인가? 자신의 결단에 그 힘은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