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마을에 솔개가 나타나면 어른들은 서둘러 마당의 닭들을 우리에 몰아 놓으셨다. 드높은 가을 하늘을 유유히 비행하는 솔개는 그렇게 고요 속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한동안 큰 원을 그리며 마을 위에 머무르다 사라지곤 했다. 그런 솔개는 하늘의 제왕이자 스스로 극한의 고통을 견디어 환골탈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피지올로구수(Physiologus)는 중세 식자들 사이에 성서만큼이나 많이 읽힌 이야기식 자연도감이다. 자연에 대한 관찰 지식을 우화처럼 엮어 사람들의 지적욕구를 채워주었고, 동시에 교훈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팰리콘이나 유니콘과 같은 상징적 동물들도 이 책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특히 독수리의 한 종류인 솔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
솔개는 조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로 70년을 사니 사람만큼이나 그 수명이 길다. 하지만 40년쯤 되었을 때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발톱은 두텁게 노화되어 사냥감을 잡아챌 수 없고, 부리는 늘어지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된다. 또한 깃털은 너무 짙고 무거워져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힘겹고 사냥을 할 수도 없다. 이때 솔개는 자연도태를 당하거나, 아니면 갱생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가장 높은 산에 올라 바위 틈에 둥지를 틀고, 바위에 부리를 내리쳐서 부스러뜨리는 처절한 고통을 감수한다.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면 두텁게 노화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다시 새로워진 부리와 발톱으로 무거워진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낸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면 솔개는 날카로운 부리와 날렵한 발톱, 가벼운 깃털로 세차게 하늘을 날아올라 30년을 더 살 수 있게 된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몇 번은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에 직면해야만 한다. 돌아갈 수 없고 회피해서는 안 되는 직면의 순간인 것이다. 삶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솔개가 부리를 찧고, 발톱을 갈고, 깃털을 뽑는 고통의 과정을 우리는 심리적 역동으로 스스로의 내면에서 만들어내고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캐럿은 지난 20년간 우리를 지탱해왔던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완전히 갱신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사업모델과 최고의 고객 경험 창조,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갱생한 솔개는 단지 수명 연장이 아니다. 지난 40년간 축적된 사냥술과 생존 경험의 시스템 위에 다시 태어난 용맹스러운 솔개이다.
진짜 제왕의 귀환인 셈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