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좋다. 파랗다. 바람도 좋다. 시원하다. 때로는 후덥지근함에 짜증이 올라온다. 하루 종일 찌는 햇볕에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자연 현상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역동이 좀 다릅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고통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유는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가 지난 30만 년 동안 문명을 진화시켜 온 힘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비극과 굴곡들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 자유를 추구하는 그 힘이 우리의 DNA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전에는 우리를 묶고 있는 환경과 외부적인 구속으로부터 자유도를 높여가는 그런 자유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내면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의식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소명일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쉽게 물드는 마음의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우리의 마음 역동이 여기에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반응하고 축적된 마음들이 화석화되어 내 일상을 자기 마음대로 색칠해 댑니다. 이것은 향미가 있는 인스턴트 식품을 주식으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그때 게으른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줄 수는 있으나 미혹의 덫에 걸린 몸은 곧 중병을 가져올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면, 쉽게 물드는 인스턴트 마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나'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 말과 행동과 생각을 의심할 때 비로소 나는 ‘관찰’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입니다. 눈이 내면으로 향할 때 우리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느낌, 감정, 생각들이 모두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안에 원래부터 있었던 ‘나’, 영원한 ‘나’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단지 ‘나’로 경험된 이야기들만이 점철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화(空花)라는 말이 있습니다. 허공에 핀 꽃이죠. 눈을 비비고 나면 잠깐 보이는 헛것과 같은 것입니다. 탐욕과 집착이 일어날 때 즉시 허공에 핀 꽃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환영인 줄 아는 순간 거기에 머무를 이유도 바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내면으로 들어가 그 집착의 뿌리가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고요하게 들여다보면 저절로 그 뿌리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수용하고 화해하는 과정은 성숙으로 가는 구름다리와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더 유연하고 더 부드러워집니다.
‘참나’는 이것을 온전히 아는 지혜입니다. 일상에서 걸리지 않는 마음, ‘자유’를 행하는 존재입니다. 믿음이 아닌 깨달음을 통해 온전히 나를 알고 나아가는 것, 그 안에서 경계 없는 삶의 자유가 펼쳐집니다.
C.E.O James Roh (노상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