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전, 초라한 오두막집에 사는 어린 남매에게 요술쟁이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의 간청으로 과거와 미래로 시간여행을하며 <파랑새>를 찾아 떠난 남매의 모험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잡은 파랑새들은 새장에 넣는 순간 색깔이 변하거나 죽어버리고 만다. 남매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을 때 뜻밖의 파랑새를 발견하게 되는데, <파랑새>는 어린아이의 모험을 통해서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메이는 행복이 언제, 어디에 있는 무엇이 아닌, 조금만 다른 눈으로 보면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행복에 목말라 하고 있으며, 그럴수록 더욱 손에잡히지 않은 신기루처럼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서 듣는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도 행복에 관한 것인데, 삶에서 일을통해 행복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마 인간은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잡아서 나만의 ‘새장’에 넣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은 아닐까?.
심리학에서 행복은 크게 두가지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경향성인데, 인간행동의 근간이 되며 동기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여기서 출발하였다.문제는 이러한 특성의 행복들은 충족되고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갈증이 반복적으로 다시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러닝머신을 타는 것 같다고 해서 ‘트레드밀 효과 (treadmill effect)’라고 한다.
반면, 다른 한가지는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내면의 가치를 ‘참자기(true-self) 혹은‘다이몬(daimon)’ 이라 하며,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추구해야할 성장지향적 보편적 행복으로서 ‘Optimal-Happiness’라고 불렀다.
이처럼 행복이란 새처럼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새장에 가두어둘 수 있는 그 무엇일 수도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확고히 인식하기 전까지, 저마다의 파랑새를 찾아 떠도는 유랑은 계속 될 것이다. 행복철학자 헤르만 헤세가 ‘인간의 지고하며 유일한 목표는 행복이다’라고 이야기 함과 동시에 ‘행복을 추구하는 한, 행복을 누릴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고대철학의 아버지 헤라클레이토스는 ‘일상에서 신성(神聖)은 스스로 들어난다 (Ethos Anthropos Daimon)’라고 했다. 만약,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고자 한다면 이것은 각자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신성(daimon)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해야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매가 찾은 <파랑새>, 그 신성을 찾을 때 우리는 비로서 지고한 존재로서의 행복을 일상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우리 모두가 삶의 매 순간에 직면해서, 일상에서 더 행복하고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다.
C.E.O James Roh (노상충)